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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2018 _ 강풍_김용민

강풍은 마그리트를 이렇게 공격한다. ‘이것은 읽을 수 없지 않다.’ 친절한 방법론을 거절하고 시선은 ‘연약한 과감’하게 구멍을 낸다. 캔버스 화면에 들어온 이상, 언어는 응시의 감시 아래서 벗어날 수 없다. 읽으려고 하는 눈은 공백을 채우고 보려고 하는 눈이 그 자리를 다시 도려낸다. 강풍의 눈은 고요하다. 주변은 시끄럽다. 뚫린 공간은 시간을 지연시키며 존재를 망설이게 한다. 이것을 존재의 불안이라고 한다.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없지 않다. ‘텍스트 그리고 이미지’의 담론과 결이 다른 지점이다. 의도를 앞서서 군데군데가 빌 때 문맥의 기호는 대상화할 수 없는 지대와 마찰한다. 여기서 화가의 독해가 내부로 숨어 ‘역설적인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 드로잉의 직물이 만든 숲에 하얀 현수막의 장치가 걸쳐서 그러기 이전에 장소를 점유하는,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존재를 후빈다. 한 눈으로 구멍을 보면 화가의 숲이 보인다. 거기는 붓을 잡고 있는 웅크린 손의 몽상이다. 꿈을 꾸는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눈을 감아야 한다. 의식이 잠들어야 한다. 그래야 보이는 세계다. 강풍은 ‘세계 내 존재’를 비튼다. 분명하게, ‘세계 내 존재’와 ‘세계 바깥 존재’가 다르지 않은가라고 꼰다. 지금 우리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세 개의 플래카드가 제거되었을 때에도 여전이 남는 ‘상상하는 즐거움’이다. 강풍으로 주인은 집에서 가출한다. 알고 보니 집 아래 지하로 피한다. 집은 주체가 없는 빈 공간으로 하지만 내부로 숨은 주체가 분명하게 남아 있는 움직이는 장소다. 그러니까 시선은 바람이다. 메타포를 휘날리게 하는 소리 없는 시다.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라 빈집을 흔들어 울리게 한다. 보는 것, 도피한 주체는 그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김용민 (뮤지엄산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