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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인공과 자연의 ‘중간지대’를 그리다 _김홍기

인공과 자연의 ‘중간지대’를 그리다 

 

1. 뜻밖의 균형과 배치 

어딘가 기묘한 모습의 개가 있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개의 몸에 아파트 도면이 여럿 수 놓여 있다. 한편 자연적으로 나고 자란 나뭇가지가 인공적으로 깎아 만든 각목에 끈으로 동여매어 지탱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오래된 나무껍질 같은 살갗을 지닌 한 노인의 얼굴이 우두커니 당신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여기엔 인공과 자연, 생명과 죽음 등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이 뜻밖의 균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이 풍경들은 간혹 설치작업의 형식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이해민선의 작업의 근간은 역시 드로잉에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작가가 드로잉을 수행하는 방식 자체가 작업의 주제와 서로 완벽한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2. 아파트, 도시의 동물 

그 일치는 [‘APT’라는 이름의 짐승(An animal called ‘APT’)]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는 아파트라는 현대 도시의 대표적인 주거 환경을 우리와 친숙한 동물인 개와 결합시킨다. 

 

아파트는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인공적 건축물이지만 작가는 그 안에서 마치 유기체적 생물과 같은 특성을 발견한다. 번호를 입력하면 문을 열어주고 스위치를 누르면 조명을 켜주며 스스로 실온을 감지하며 냉난방을 실행하는 아파트라는 공간은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의 복잡한 회로로 이루어진 생명체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드로잉은 자연적인 것(개)과 인공적인 것(아파트)이 서로 대립되기는커녕 독특한 방식으로 균형을 이루며 긴밀하게 연결된 일종의 ‘중간지대’를 보여준다. 이 ‘중간지대’가 바로 이해민선이 시각화하고자 하는 현대의 풍경이다. 

이런 주제를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최적의 방식이 바로 드로잉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드로잉을 수행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인공과 자연의 섬세한 균형을 시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컴퓨터 드로잉과 디지털 프린트를 이용해 아파트 도면을 화폭에 담아내고 그 위에 손으로 개의 형상과 털을 덧그린다. 

이렇듯 기계와 손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는 극적인 방식은 그 자체로 인공과 자연의 ‘중간지대’를 이리저리 거니는 퍼포먼스라고 여길 만하다. 

 

그런가 하면 [직립식물(Planta electus)]이라는 제목의 회화는 인공과 자연의 조화가 생명과 죽음의 조화와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살아있는 꽃나무가 죽은 나무로 만든 지주목에 의지해 직립해 있는 모습은 자연(꽃나무)과 인공(각목)이 결합된 형태이자 생명(꽃나무)과 죽음(각목)이 어우러진 장면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그 생명을 영위한다는 사태가 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생명은 죽음에 의지함으로써 생명력을 유지하고, 죽음은 생명에 이바지함으로써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이렇듯 작가는 생명과 죽음의 엄격한 이분법을 배제하고 양자가 끈으로 동여매어 공존하는 ‘중간지대’를 그린다. 

[‘APT’라는 이름의 짐승(An animal called 'APT')]과 [직립식물(planta electus)]이 모두 [덜 죽은 자들(Half Dead Things)]이라는 연작의 일부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덜 죽은 자들’은 다른 말로 하면 ‘더 산 자들’일 것이다. 

 

즉 이해민선에게 죽음과 생명은 ‘더’와 ‘덜’이라는 정도상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더 또는 덜 인공적인 것, 더 또는 덜 자연적인 것, 더 또는 덜 산 자들, 더 또는 덜 죽은 자들이 섬세한 조화와 균형을 도모하는 곳이 바로 이해민선이 추구하는 ‘중간지대’이다. 

 

[나와 말하지 않은 사람(The person who doesn’t talk with me)]은 인간과 자연의 동형성을 보여준다. 작가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한 레지던시에 머물 때 그린 이 작품은 그곳 노인들의 살갗과 오래된 나무껍질이 서로 결합하는 순간을 포착한 드로잉이다. 

노인이 나무 같고 나무가 노인 같은, 인간과 자연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동여매진 이 ‘중간지대’가 작가의 독특한 드로잉 작법을 통해 드러난다. 이해민선은 나무껍질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질러 그 이미지를 얻어내고 그 위에 손으로 가필해 노인-나무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 드로잉에서도 기계적인 작법(프로타주)과 전통적인 작법(손 드로잉)이 적절히 결합되어 있다. 

나무와 인간의 차이가 로고스(말)의 유무라고 할 때 나와 말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나무와 구별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렇듯 작가는 나무껍질에서 인간의 얼굴을 찾아내고 노인의 살갗에서 나무의 질감을 느낀다. 

결국 나와 말하지 않은 사람의 형상은 인간과 자연의 ‘중간지대’를 대표하는 인격화된 이미지일 것이다. 

 

5 조율과 몰입의 에너지 

이해민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면밀히 관찰하는 가운데 상상력이 샘솟는다고 말한다. 그는 서로 대립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윤곽선이 흐려지고 뒤섞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광경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해낸다. 

 

인공과 자연, 생명과 죽음,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일은 조심스럽고 섬세한 자세를 필요로 할 것이다. 폭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조율과 몰입의 에너지를 발휘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도 이런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터이다. 뭉근하고 뚝심 있는 작가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글 김홍기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