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민선이 띄우는 회화 유인체
필자가 작가 이해민선을 인지하게 된 것은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에서였다. 사진을 녹여낸 드로잉 작업을 굿즈 버전으로 선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굿-즈》 직전에 그는 이 사진을 녹여낸 드로잉 작업으로 개인전 《살갗의 무게》(합정지구, 2015)를 열었고, 이후 《덩어리》(플레이스 막, 2017), 《야외》(갤러리 소소, 2018), 그리고 이번 《Decoy》(페리지 갤러리, 2021)까지 몇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크고 작은 기획전에도 다수 참석했기에 이해민선의 근작들을 필자는 그럭저럭 팔로우 해온 것 같다. 그런데 이번 개인전 《Decoy》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회화에 대한 작가의 정면응시다. 이해민선은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에 드로잉이라는 표현을 붙이곤 했다. 평면 작업 외에도 영상, 설치를 병행했지만 사용한 도구나 재료가 다양하고 평면적인 결과물이 아니어도 드로잉이라는 표현을 붙이곤 했다.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낀 후에 할 이야기가 명확해지면 드로잉을 한다”[1]는 그의 말처럼 그는 할 이야기가 모아지면 이를 꺼내는 작업을 드로잉이라 여겼고, 자칭 ‘딴짓’이라 일컫는, 작가의 궁금증에서 촉발된 실험들을 통해서 다양한 폼의 드로잉 기술을 연마해왔다. 초기에는 작업의 대상이 강조되었다. 대체로 무심히 그러나 반복적으로 작가의 시선이 갔던 풍경에서 건져진 이야기가 작업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살갗의 무게》에서는 오늘날의 개발주의 사회가 만들어내거나 지향하는 풍경의 외피를 벗겨냈다면, 《덩어리》와 《야외》에서는 대상으로 삼은 풍경과 자신의 그리기 행위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내세웠다. 일례로 <봉우리>(2017) 시리즈는 봉우리가 잘려진 황량한 흙산과 비슷한 형체의 점토 조형물을 나란히 배치한 그림이다. “그림 안에는 산과 그 산을 모방하여 점토로 소조를 한 덩어리가 탁자 위에 놓여 있다”[2]고 설명한 당시 작업노트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자신의 그리기 행위와 그 대상에 대한 고민을 점토 소조에 대입한 것이다. 그런데 통상적인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면 좌대 위의 점토 조형까지도 풍경 내 사물이어야 하나 작가는 점토 조형이 풍경의 모방이라고 분명히 한다. 이 작업들은 캔버스로 가려진 창밖 풍경을 캔버스 위로 가져와 재현한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을 연상시킨다. 마그리트는 우리가 보려는 것을 볼 뿐임을 지적했다. 이해민선은 본 것과 보려는 것 사이에서 갈등케 한다. 여기에는 작가의 그리기 행위까지 포함된다. 그는 “개인의 창조적 세계가 원형의 세계를 유추하게 하는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주체가 된다”[3]고 말했다. 이전까지 작가가 대상, 즉 그림 밖 세계를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대해서 고민했다면, 이때부터는 그림이 유추케 하는 원형 세계, 즉 그림이 하는 일 자체가 작업의 중심이 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시선이 머문 풍경이나 사물들이 서로 맺는 관계, 접촉점과 같은 사회적인 맥락을 중시한 것만큼이나 덩어리감, 표면, 질감 등 회화적 요소도 무심코 넘기지 않았다. “드로잉들은 존재를 호출하는 일이었고 페인팅들은 존재에 세계를 부여하는 일이었다”[4]라는 말은 작가가 《Decoy》를 준비하면서 어떤 모색을 했는지 알려준다. 《Decoy》의 메인 작업이었던 아홉 점의 연작 <아 깜짝이야>-<사물>-<사물인 줄 알았네>-<그>-<날, 밤>-<천변에>-<웅크리고 있는>-<검은 등어리가>-<반질반질 했다>(2021)는 작가의 야간 산책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산책길에 목격한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무언가를 사물이라고 했다가, 사물인 줄 알았다고 했다가, 웅크리고 있는 검은 등이었다고도 한다. 전체 문장은 사건 장면을 묘사해주지만, 분절된 문장은 사건 자체를 분절해 모호한 서사를 유발시킨다. 실제 전시장에서의 디스플레이도 그림 사이 간격을 점점 벌려 놓아 물리적인 분절로도 이어졌다. 대신 어두운 수면(으로 추정되는 배경) 위에 떠 있는 스티로폼 조각(으로 추정되는 사물)의 명도 대비가 두드러지는데 그만큼 매끄럽게 칠해진 캔버스 표면은 대상의 실체를 드러내기보다는 문장 속 ‘반질반질’이라는 시각적 효과를 분명히 한다. 이 반질반질한 질감의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산책길에 작가가 본 것이 무엇이었을까 유추할 수밖에 없다. 디코이! 작가는 자신의 회화가 본격적으로 유인체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제부터 그의 회화가 하는 일을 지켜보라는 말 같다. <자화상을 그리다가>(2021) 이해민선이 그린 것은 덩어리 같기도 하고, 살갗 같기도 하고, 겉과 곁 같기도 하다. 장판 위에 진흙을 뭉쳐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풍경, 사물, 자화상, 무엇으로도 보일 수 있는 것을 그려 놓고, 다른 것이었다고 둘러댈 수도 있다. 반질반질한 것들로 벌써 유인하지 않았는가? (글: 이성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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